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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ARTICLE cine review | 6 ARTICLE FOUND

  1. 2009/11/01 샘터분식 리뷰 (1)
  2. 2009/10/03 라라 선샤인 리뷰
  3. 2009/09/05 지구에서 사는 법 리뷰

샘터분식 리뷰

cine review 2009/11/01 21:30
샘터분식
감독 태준식 (2008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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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젊음, 문화, 패션, 클럽, 인디, 청춘, 가끔은 패기어린 반항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홍대 거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무실에 처박혀 있던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 홍대라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건 내가 비단 젊기 때문은 아니라 생각한다.


영화 <샘터분식-그들도 우리처럼>(이하 샘터분식)은 우리가 주로 알고 있던 홍대 외의 ‘홍대’를 보여준다. 여러분이 보는 게 다는 아니에요, 이런 것도 있어요.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때론 거칠지만 인간미가 묻어나는 영상으로 말이다. 아무런 나레이션도, 설명도 없이 시작되는 영화는 그렇기에 초반에 더욱 집중력을 요한다. 눈에 익숙한 홍대며 합정 거리를 눈으로 좇다보면 조근 조근한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자기 목소리를 높여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의 온화한 표정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샘터분식 사장 최영임, 민중의 집 사무국장 안성민, 언더 힙합씬에서 활동하는 MC Jerry K. 이들이 한 다큐에서 메인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각기 다른 삶, 직업을 가졌지만 도로들이 교차하는 교차로처럼 그들이 교차되는 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세 사람 모두, 크게 보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것. 가게를 좀 더 넓히고 싶다, 여행 간 지 오래돼서 여행을 가고 싶다, 앨범이 잘됐으면 좋겠고 취업도 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소망들이다. 우리네가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 거창한 꿈이나 야망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감독은 단지 여과 없이 ‘우리 모두 그렇지 않느냐’ 며 슬쩍 어깨를 토닥일 뿐이다. <샘터분식>을 통해서.


세 사람은 1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딱 한 번 마주친다. 안성민과 Jerry K가 샘터분식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촬영이 참 고되지 않냐며, 서로의 공통분모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 버릴까봐.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고, 하등 필요 없는 불안이었다. 샘터분식 사장님은 본인의 업무에 충실히 음식을 내 주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앉아 묵묵히 식사를 한다. 그 장면에서부터 저 배 깊은 곳부터 뜨끈뜨끈해지기 시작한다. 그 곳에 내가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건 아마도 감독이 세 인물을 무리하지 않고 조명한 덕분이 클 것이다.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이 적당한 맛의 음식을 맛보듯,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도 우리처럼’ 거기 있을 뿐이었다. 특히 샘터분식을 나온 세 사람이 차례로 착용하고 있던 마이크를 떼고, 한 명 한 명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에 응할 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이것이 촌스러운 표현이란 것도 알지만, 정말 그랬다.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그들이 소소하거나 작은 소망들을 이야기할 땐 그들과 날 동일시하게 된다.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뒀던, 우리네와 닮았기에 더 짠한 그들-아니, 우리.-의 미소 때문이었다. 촬영의 고됨과 그럼에도 시원섭섭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라든가, 일은 계속 해야 하니까 라며 샐쭉이 웃어보이던 사장님의 표정이라든가, 앨범과 취업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내 주위에 있을 것 같은 청년처럼 말하는 대학생 랩퍼의 땀방울이라든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라 선샤인
감독 김아론 (2008 / 한국)
출연 양은용, 이찬영, 안지혜,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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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선수들이 아이스링크 장을 누비며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판을 가르는 날 선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가싶더니 이번엔 본격적으로 스케이트 날을 가는 걸 보여준다. 매끈하게 잘 빠진 흰색 여성용 스케이트다. 날과 마찰해 위협적으로 반짝이는 불꽃이 미관상 예쁘게 보이다가도, 표정 없는 얼굴로 “조금만 더 갈아주세요.” 라 말하는 수진을 보면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시 스케이트 날이 갈린다. 영화는 초반부터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수진(라라)은 차분한 인상을 주는 시나리오 작가다. 대부분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여서 한껏 예민해 보이기도 한다. 수진은 정당방위로 판결 난 살인사건으로 시나리오를 쓰려 한다. 실제 사건은 피해자 여성인 이미라가 정당방위라기엔 잔혹한 방법으로 피의자를 죽였다. 피의자는 이미라를 성폭행하려다 죽음을 당했고,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라 판결 내렸다. 시나리오 시안을 본 박대표는 이것저것 양념을 추가한다. 이미라를 영화 전반에 걸쳐 형상화 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굳히고 불륜, 사도 마조히즘적 플레이를 끌어와 멜로를 가미한 추리극으로 변모시키려 한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수진 스스로 상처를 끄집어내 삼자의 입장에서 되어 이야기의 살을 덧붙이고 혹은 뺀다. 그럼과 동시에 가상의 인물 ‘라라’가 되어 시나리오와 동일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동정을 구하거나 동조를 구한다. 수진은 어느 것도 구하지 않는다. 단지 수진은 누군가 제가 잡고 있는 끈을 끊어주길 바란 걸지도 모른다. 표피처럼 수진을 둘러싼 과거의 트라우마를 절단해주기를 바란 걸지도 모른다. 수진은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시나리오를 씀으로써 자신을 재구성 해 나간다. 동시에 시나리오는 자기 구원적인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구원은 다른 단어로도 대체될 수 있다. 최면, 위안……


자료 조사에 임하는 수진은 본인이 소재를 발견해 쓰는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연신 무언가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무언가 감추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유독 수진이 틀 너머나 창틀, 차창, 난간 따위의 것들 너머로 시선을 두는 장면이 많다. 진짜 수진은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쓰는 시나리오임에도 한 발짝 물러나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다. 눈빛은 곧 무너질 것처럼 축축한데 냉철하려 보이는 수진의 면들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듯, 수진은 저만 아는 응어리를 꾹꾹 눌러 담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그럴 때마다 수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수진을 방치한다. 계절적 배경과 어우러져 더욱 차갑고 관조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좋은 기회다. 대상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김아론 감독은 미쟝센에 능하다. 전작 <온실>은 물론이거니와 <라라 선샤인>에서도 그 재능이 드러난다. 저예산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훌륭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 제작되는 저예산 영화로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비주얼을 선사한다. 인물과 배경, 갖다 쓰인 소품들 모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요소 하나를 더 하는 대신 덜어낸 것처럼 씬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미쟝센과 미술은 <라라 선샤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람들은 힘들 때 자신들을 구원해 무언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 구원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더 큰 절망과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극 초반, 수진은 날을 예리하게 간 스케이트를 들고 어떤 교수를 찾아간다. 첼로 레슨을 가르쳐주었고, 수진이 스스로 오른쪽 손을 스케이트 날에 내맡기게 한 장본인이다. 교수의 손이 단두대 같은 날 아래 놓인다. “자르세요.” 높낮이 없는 목소리 톤으로 넌지시 자르라 말하는 수진, <중경삼림> 속 누구처럼 노란 가발을 쓰고 무자비하게 교수를 죽이는 라라. 복수 후 라라가 마주한 건 구원이 아닌 원죄보다 더 큰 구렁텅이였을지도 모른다. 복수를 함으로서 자신의 과거가 흐릿해지지도, 속 시원히 보상받지도, 혹은 스스로 구원받지도 못한다. 피 묻은 코트와 끝맺지 못한 시나리오가 남을 뿐이다. 빈 아이스링크에 혼자 서 있는 라라. 화면 서서히 어두워진다.  


  -INDIESPACE on PAper vol.24 (2009년 10월)


지구에서 사는 법
감독 안슬기 (2008 / 한국)
출연 박병은, 조시내, 선우, 장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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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텅 빈 집 안에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초월한 느낌을 준다. 남자의 이름은 연우. 공무원인 아내(혜린)에게 빌붙어 사는 시인이다. 본인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고 원래 그랬다는 듯,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그것이라는 듯 자연스레 기생하여 살아간다.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하는 인물이다. 분명 한 두 번 접하는 곳이 아님에도 집 안을 서성이는 연우는 이방인처럼 이질감을 준다. 어디에 발붙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허깨비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혜린도 마찬가지다. 연우와는 다른 의미로 생기가 없다. 초반의 혜린은 인간임에도 연우보다 훨씬 비정한 느낌을 준다. 혜린이 하는 일 탓이 클 거다. 혜린은 연우에게 제 본업을 숨긴 채 ‘감시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두 사람이 부부이고 한 집에서 생활하는 동거인임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공생은 당연한듯하면서도 불온하게 느껴진다.

연우는 그러던 중 자신과 동류인 여자, 세아를 만난다. 여자는 말한다. ‘지구는 유배지’ 라고. 혜린과 소통하고 싶은 연우는 여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연우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권태기를 견디고 있고,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영화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걸 제외하면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안슬기 감독은 알려졌다시피 현직 고등학교 교사다. 영화 작업은 방학 중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구에서 사는 법>은 2008년 초, 겨울방학 동안 촬영했다.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늘 가족이 빠지지 않는다. 가족이 해체되든 새롭게 형성되든. 동시에 그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을 관통한다. 예전에 모 영화평론가가 안슬기 감독에 대해 ‘그는 아주 멀리 달아나는 영화를 보여주지는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고집스러운 감독’ 이라 평한 적이 있다. 첫 장편 데뷔작부터 그랬다.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새롭게 구성된 대안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의 노래는>은 스무 살, 청춘도 버거운 나이에 가족마저 해체되었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사는 법>은?


대부분이 제목만 봤을 때는 밝고,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부터가 그랬다. 물론 그런 설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동안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이다지도 일상성에 대입한 영화가 있었을까.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가 일상에 침투해 있다. 인간과 외계인의 경계선이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지구에서 사는 법> 속 인물들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플롯 상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야기의 속도 자체도 빨라진다. 초반의 무게중심이 관계와 소통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뒤로 갈수록 뒤틀리고 황당한 유머로 옮겨가는 느낌이다.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장면들이 몇 개 있었다.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다면 더 좋았을.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미덕에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음은 물론이요, 뒤에 어떤 장면이 나올까 궁금증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장르적 클리셰를 허물고 본 적 없던 독특함을 덧씌운다. 게다가 수다스럽지도, 지나치게 설명적이지도 않지만 감독의 섬세한 터치 때문인지 보는 내내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외계인임에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인간이 될 수 없는 연우.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를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은 연우가 눈을 감은 뒤에 펼쳐지는 기묘한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영화에서 간간히 등장했던 것이다. 외계인들의 눈에 비친 사물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연우의 눈에 비친 혜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연우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생각한 혜린이 분노를 표출할 때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하다. 그 전까진 혜린이 연우보다 더 외계인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권태롭고 히스테릭한 표정 때문일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 어째서 이 영화의 제목이 <지구에서 사는 법> 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개개인에게 남겨진 숙제 같다. 관객을 고민하게 하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그것은 방법론적인 ‘사는 법’일 수도 있겠고, 설거지하는 아내의 바지를 내리는 충동적인 소통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영화는 무엇이 됐든 망설이지 말고 실현하라고 말한다. 또한, 당신이 진짜라 믿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지 의심해 보라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사랑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랑이 지구라면 지구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습득했는지 슬그머니 물어온다. 혹은 지구에서 산다는 건 어쩌면, 길고 긴 투쟁의 나날이 아닐지. 슬쩍 어깨동무하며 동조를 구한다. 나는 당장 펜을 들었다. 그리고 적는다. 내가 지구에서 산다는 건 어땠는지 기억을 헤집으며.  

 


- INDIESPACE on PAper vol.23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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