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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슬기 / 교원,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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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매번 새로운 상상력과 친숙한 포용력으로 관객들을 설레게 했던 안슬기 감독의 <지구에서 사는 법>이 24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구에 유배’ 된 외계인들이 인간들 사이를 소리 소문 없이 활보한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습한 고독감이 남아 있을 뿐이다. 관계의 조율에 능숙한 감독의 전작들만큼이나 짙은 잔상이 남는 영화에 틀림이 없다. 서면으로 안슬기 감독과 지구에서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현실보다 더 리얼하다.
2005년 12월 오사카 한일 엔터테인먼트 영화제 독립영화 섹션 시사회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 진행자가 물었다. “다음 영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영화제에서 본 일본 영화들은 일본영화의 특징이 더 극단적으로 담겨 있었다. 일본 영화들을 보면-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감정이나 상황이나 캐릭터가 꽤 과장되어 있다. 무표정한 남자는 엄청나게 무표정하고, 마초 같은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간드러진 여자의 콧소리는 과연 실제 일본 여자들이 저럴까 하면 그도 아닌 것 같다. 즉 일본 영화에서 ‘일상’의 표현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에서는 ‘진짜’와 다른 ‘가짜’는 용납되지 않는다. 아무리 코미디 영화라고 하더라도 실제와 다르면 “에이, 저런 게 어딨어?”한다. ‘일상’과 ‘진짜’에 대한 숭배다. 그 오랜 숭배자 중 하나인 나는 그날은 왠지 오히려 일본이 부러웠다. 진행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일상의 판타지는 많잖아요. 전 오히려 일상이 아닌 것을 일상처럼 느끼게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가 문어대가리의 외계인이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도 일상으로 느껴질까?
제목만 보고는 지구온난화 같은 게 생각났다. 제목을 짓게 된 결정적인 이유 같은 게 있나.
결정적인 이유는 없다. 제목을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는 내 영화의 제목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김대우 감독님께서 [사랑 아니다]란 단편영화의 제목을 칭찬해 주셨다. 그 후로 제목에 대해 기고만장해 진 것 같다. 첫 장편 [다섯은 너무 많아]도 반대한 스태프들이 있었지만 내 생각대로 갔다. [나의 노래는]도 그렇고. 지금 다른 장편을 위해 저축해 넣은 제목도 많다. 말해보라고? 비밀이다. [지구에서 사는 법]이라는 제목은 [지구에 매달리기]라는 이현세 작가의 만화 제목에서 고민을 시작한 기억이 난다. 지구온난화가 생각난다고? 뭐 지구에서 살기가 점점 퍽퍽해지니 온난화 하고도 일면 연결되는 지점이 있긴 있다. 사실,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것이 지구온난화와 약간 관련된(?) 이야기다. 아, 여기까지.
현직 교사라고 들었다. <지구에서 사는 법>(이하 지구)도 2008년 초, 겨울방학 동안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 작업하는 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장점은 학교를 관두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 그 외엔 장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스태프들은 좋은 측면이 있겠지. 아무리 촬영이 연기 되더라도 개학을 넘길 순 없으니. 단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겨울에만 찍어야 하니, 세 장편의 계절 배경이 다 겨울이다. 고로 스태프와 배우들 고생이 무척 많다. 프리는 가을에 해야 하니 감독으로서 참 민망하다. 회의를 평일 저녁 아니면 주말에 해야 한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고, 스태프들에게 많이 의지해야 한다. 편집은 1학기에 해야 하니, 후반업체들에게 미안하다. 이번 작품의 믹싱도 추석 연휴에 했다. 촬영은 짧게, 후반은 길게! 이게 현직 교사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나의 노래는>도 그렇지만 <지구> 또한 외로움이나 고독에 대한 고찰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나의 노래는>을 보고 울컥한 마음이 들었던 관객 중 하나였다. 멋지고 폼 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감사하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그렇고, [나의 노래는]도 그렇고 자기 이야기라고 느끼는 관객들이 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니 착하게 사셨나 보다.(웃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불현듯 “아! 나는 그럼 앞으로 이렇게 해 나가야지.” 란 생각을 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든 생각이라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딱 내가 원하는 반응이다. [지구에서 사는 법] 만들기 전에 썼던 글을 하나 소개 하겠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의 심장이 마구 뛰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며 “씨발.”이라고 속으로 외쳤으면 좋겠다. 그 뒤의 말이 “그래 한번 살아보자!” 든, “다 덤벼!” 든, 아니면 말로 못할 객기 든. 나는 관객이 자기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작고 깊은 ‘양아치의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 욕이다. 영화든지 권위이든지 나의 나약함이든지 운명이든지 악마든지 거대한 힘이든지 신이든지, 여하튼 그 무엇을 향해 하는 욕이다. “이 개새끼야!” 욕할 때 감상이야, 욕해보셨으면 아실 테고.(웃음)
조시내씨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감독님의 작품에 여러 번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여러 번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건 서로가 어떤 대상으로서 매력적이라는 건가?
일단은 믿는 배우다. 그리고 나에게 편한 배우이기도 하다. 조시내씨와 함께 영화작업을 한 지 10년이 된 것 같다. [다섯은 너무 많아] 현장에선 스탭들이 시내형님이라고 불렀다. 강단 있고, 의리 있는 그런 분이다. 이번 작품은 나름대로 내가 긴장할 조건이 많은 작품이었다. 해온 작품보다 많은 제작비를 쓰는 작품이고, 제작사에서 하는 첫 작품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부터 혜린은 조시내씨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오디션을 계속 보긴 했지만, 더 나은 답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조시내씨가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차기작에 대한 계획 있다면 들려 달라.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상상력을, 장르의 파괴를 보여줄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두 개인데, 하나는 실패한 아버지들 어머니들을 둔 현시대 아이들의 희망가이다. 장르파괴는 아니다. 그동안 나를 지지해준 관객 분들에게 감사의 선물이 되는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서 구체적인 스토리를 밝히긴 어렵다. 기대해도 좋다. 나머지 하나는 남자를 죽인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굉장히 빠른 편집과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다. 최소의 기간으로, 지금은 사양길인 DV로, 제발 가을에, 게릴라식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시나리오가 나와 봐야 알겠다. 이 작품이 형식적으로 좀 특이하다면 특이하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구에서 사는 법은 어떤가. 살만 한가.
살만하지 않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옆에 있는 인간들과 어깨 걸고 놈에게 총을 겨누는 수밖에. 시나리오 은사이신 심산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 하신다. “삶은 원래 불행한 것이니, 우리라도 행복하자.” 심산선생님이 지구에서 사는 법으로 유희를 택하셨다면, 나는 연대와 투쟁을 택한 셈이다.
-INDIESPACE on PAper vol.23 (2009년 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