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분식 리뷰

cine review 2009.11.01 21:30
샘터분식
감독 태준식 (2008 / 한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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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젊음, 문화, 패션, 클럽, 인디, 청춘, 가끔은 패기어린 반항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홍대 거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무실에 처박혀 있던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 홍대라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건 내가 비단 젊기 때문은 아니라 생각한다.


영화 <샘터분식-그들도 우리처럼>(이하 샘터분식)은 우리가 주로 알고 있던 홍대 외의 ‘홍대’를 보여준다. 여러분이 보는 게 다는 아니에요, 이런 것도 있어요.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때론 거칠지만 인간미가 묻어나는 영상으로 말이다. 아무런 나레이션도, 설명도 없이 시작되는 영화는 그렇기에 초반에 더욱 집중력을 요한다. 눈에 익숙한 홍대며 합정 거리를 눈으로 좇다보면 조근 조근한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자기 목소리를 높여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저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의 온화한 표정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샘터분식 사장 최영임, 민중의 집 사무국장 안성민, 언더 힙합씬에서 활동하는 MC Jerry K. 이들이 한 다큐에서 메인 인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각기 다른 삶, 직업을 가졌지만 도로들이 교차하는 교차로처럼 그들이 교차되는 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세 사람 모두, 크게 보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이라는 것. 가게를 좀 더 넓히고 싶다, 여행 간 지 오래돼서 여행을 가고 싶다, 앨범이 잘됐으면 좋겠고 취업도 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소망들이다. 우리네가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 거창한 꿈이나 야망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감독은 단지 여과 없이 ‘우리 모두 그렇지 않느냐’ 며 슬쩍 어깨를 토닥일 뿐이다. <샘터분식>을 통해서.


세 사람은 1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딱 한 번 마주친다. 안성민과 Jerry K가 샘터분식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턱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촬영이 참 고되지 않냐며, 서로의 공통분모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 버릴까봐.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고, 하등 필요 없는 불안이었다. 샘터분식 사장님은 본인의 업무에 충실히 음식을 내 주고,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앉아 묵묵히 식사를 한다. 그 장면에서부터 저 배 깊은 곳부터 뜨끈뜨끈해지기 시작한다. 그 곳에 내가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건 아마도 감독이 세 인물을 무리하지 않고 조명한 덕분이 클 것이다. 더할 것도 덜한 것도 없이 적당한 맛의 음식을 맛보듯,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도 우리처럼’ 거기 있을 뿐이었다. 특히 샘터분식을 나온 세 사람이 차례로 착용하고 있던 마이크를 떼고, 한 명 한 명 카메라 앞에 서서 인터뷰에 응할 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이것이 촌스러운 표현이란 것도 알지만, 정말 그랬다. 어쩌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것 같은 그들이 소소하거나 작은 소망들을 이야기할 땐 그들과 날 동일시하게 된다.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꾹꾹 눌러뒀던, 우리네와 닮았기에 더 짠한 그들-아니, 우리.-의 미소 때문이었다. 촬영의 고됨과 그럼에도 시원섭섭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라든가, 일은 계속 해야 하니까 라며 샐쭉이 웃어보이던 사장님의 표정이라든가, 앨범과 취업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내 주위에 있을 것 같은 청년처럼 말하는 대학생 랩퍼의 땀방울이라든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라 선샤인
감독 김아론 (2008 / 한국)
출연 양은용, 이찬영, 안지혜,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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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선수들이 아이스링크 장을 누비며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판을 가르는 날 선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가싶더니 이번엔 본격적으로 스케이트 날을 가는 걸 보여준다. 매끈하게 잘 빠진 흰색 여성용 스케이트다. 날과 마찰해 위협적으로 반짝이는 불꽃이 미관상 예쁘게 보이다가도, 표정 없는 얼굴로 “조금만 더 갈아주세요.” 라 말하는 수진을 보면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시 스케이트 날이 갈린다. 영화는 초반부터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수진(라라)은 차분한 인상을 주는 시나리오 작가다. 대부분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여서 한껏 예민해 보이기도 한다. 수진은 정당방위로 판결 난 살인사건으로 시나리오를 쓰려 한다. 실제 사건은 피해자 여성인 이미라가 정당방위라기엔 잔혹한 방법으로 피의자를 죽였다. 피의자는 이미라를 성폭행하려다 죽음을 당했고,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라 판결 내렸다. 시나리오 시안을 본 박대표는 이것저것 양념을 추가한다. 이미라를 영화 전반에 걸쳐 형상화 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굳히고 불륜, 사도 마조히즘적 플레이를 끌어와 멜로를 가미한 추리극으로 변모시키려 한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수진 스스로 상처를 끄집어내 삼자의 입장에서 되어 이야기의 살을 덧붙이고 혹은 뺀다. 그럼과 동시에 가상의 인물 ‘라라’가 되어 시나리오와 동일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동정을 구하거나 동조를 구한다. 수진은 어느 것도 구하지 않는다. 단지 수진은 누군가 제가 잡고 있는 끈을 끊어주길 바란 걸지도 모른다. 표피처럼 수진을 둘러싼 과거의 트라우마를 절단해주기를 바란 걸지도 모른다. 수진은 자전적인 요소가 담긴 시나리오를 씀으로써 자신을 재구성 해 나간다. 동시에 시나리오는 자기 구원적인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구원은 다른 단어로도 대체될 수 있다. 최면, 위안……


자료 조사에 임하는 수진은 본인이 소재를 발견해 쓰는 시나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연신 무언가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무언가 감추는 것처럼. 그래서인지 유독 수진이 틀 너머나 창틀, 차창, 난간 따위의 것들 너머로 시선을 두는 장면이 많다. 진짜 수진은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쓰는 시나리오임에도 한 발짝 물러나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다. 눈빛은 곧 무너질 것처럼 축축한데 냉철하려 보이는 수진의 면들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듯, 수진은 저만 아는 응어리를 꾹꾹 눌러 담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그럴 때마다 수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수진을 방치한다. 계절적 배경과 어우러져 더욱 차갑고 관조적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좋은 기회다. 대상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김아론 감독은 미쟝센에 능하다. 전작 <온실>은 물론이거니와 <라라 선샤인>에서도 그 재능이 드러난다. 저예산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훌륭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 제작되는 저예산 영화로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비주얼을 선사한다. 인물과 배경, 갖다 쓰인 소품들 모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요소 하나를 더 하는 대신 덜어낸 것처럼 씬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미쟝센과 미술은 <라라 선샤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람들은 힘들 때 자신들을 구원해 무언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 구원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더 큰 절망과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극 초반, 수진은 날을 예리하게 간 스케이트를 들고 어떤 교수를 찾아간다. 첼로 레슨을 가르쳐주었고, 수진이 스스로 오른쪽 손을 스케이트 날에 내맡기게 한 장본인이다. 교수의 손이 단두대 같은 날 아래 놓인다. “자르세요.” 높낮이 없는 목소리 톤으로 넌지시 자르라 말하는 수진, <중경삼림> 속 누구처럼 노란 가발을 쓰고 무자비하게 교수를 죽이는 라라. 복수 후 라라가 마주한 건 구원이 아닌 원죄보다 더 큰 구렁텅이였을지도 모른다. 복수를 함으로서 자신의 과거가 흐릿해지지도, 속 시원히 보상받지도, 혹은 스스로 구원받지도 못한다. 피 묻은 코트와 끝맺지 못한 시나리오가 남을 뿐이다. 빈 아이스링크에 혼자 서 있는 라라. 화면 서서히 어두워진다.  


  -INDIESPACE on PAper vol.24 (2009년 10월)


김아론 감독 인터뷰

work 2009.09.26 19:45

 

김아론 / 영화감독
출생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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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론 감독은 젊다. 젊기에 매번 그리도 매혹적인 작품을 내놓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 새로운 스토리와 배우는 없다고 말하는 단호함이 그를 젊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관객을 배려할 줄 아는 감독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서면으로 김아론 감독이 그려낸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 <라라 선샤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라라 선샤인>(이하 라라)이 장편 데뷔작이다. 이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신문에서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라는 성폭행 피해여성의 법정진술을 봤고 모티브를 얻었다. 마치 <라라>의 김수진이 신문기사에서 이미라 사건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듯이 말이다.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의 살인은 정당방위가 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가해자를 찾아가 복수한다면 일급살인죄가 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상황인가? 이렇듯 법이란 여러 가지로 허점이 많다. 법이 심판을 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라라>의 드라마는 시작된다.



미장센이 인상적이었다. 미술적인 부분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편인지.


미장센은 내 영상표현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라라>, <온실>은 더욱 미장센에 치중한 작품이다.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편집할 때 배우의 연기와 미장센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배우의 연기가 우선하겠지만 <라라> 작업은 좀 다르다. 프레임 안에 모든 것들이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 저예산인 제작비 여건상 미술에 많은 돈을 들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장소헌팅과 카메라 앵글로서 미학적인 시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라라>에서 보여지는 모든 앵글들은 인물의 심리를 반영한 것들이다. 수진의 불안한 심리, 이중적인 자아가 카메라 앵글 안에 펼쳐지도록 노력했다. 즉 카메라 앵글이 드라마를 낳을 수 있도록 설정했다. 또한 기존 저예산 영화에서 보여지는 거칠고 투박한 느낌보다는 안정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수진이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 자체가 관객으로선 미지의 작업이면서도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꿈 꿔 볼 것 같다. 자기위안적인 행위일 수도, 자기구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법이 심판을 하지 못한다면? 그럼 종교가 그녀를 구원할 것인가? 영화 속에서는 그 구원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녀는 더 큰 절망과 고통을 받는다. 또한 복수가 끝난다면 그 다음엔 누구에게 복수해야 할까? 이렇듯 이 영화는 영원히 치유되기 힘든 수진의 아픔을 담고 있다. <라라>는 김수진이라는 여성의 정신분석학적 보고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본인의 기억 중에 새로이 써내려가고 싶은 게 있나. 긍정적인 의미로든, 그 반대든.


<키즈리턴>, <릴리슈슈의 모든 것>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방황(?)하는 10대의 이야기를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고 물론, 내 경험도 많은 부분 녹아져 있을 것이다. 내 청소년기도 꽤 드라마틱하다. 모범생이 아니었다고 하면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하하.



소외당하거나 기득권층에게 압박 받는 이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라라>도 그렇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헬로우 마이 러브>도 퀴어적인 코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라라>를 만들면서 시나리오 자료를 조사하고 여성인권 문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영화를 한 편씩 끝낼 때 마다 훌륭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시각으로서 여성에 대해 그리고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라라>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여성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교훈적인 메시지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표현하려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라는 형식을 완벽하게 이용해야 하며 영화 자체로서의 재미(오락이 아닌)가 있어야한다. 이것은 항상 내가 고심하는 부분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헬로우 마이 러브>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뛰어넘는 영화다. 기존의 퀴어와는 색깔이 좀 다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기대하셔도 좋다.



<헬로우 마이 러브>도 개봉하지 않나. 발칙한 소재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 이후의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들려 달라.


극장에서 꼭 보시라. <라라>와 <온실>을 본 관객들에게서 <헬로우 마이 러브>로 김아론이 대중들과의 소통에 유연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라라>와 <헬로우 마이러브>를 비교해서 본다면 보다 즐거운 영화 관람이 될 것이다. 차기작 같은 경우 계획하고 있는 스릴러가 있는데, 정부, 대통령, 킬러, 음모이론 등에 관한 내용이다. 꼭 내 시나리오로만 작품을 할 계획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시나리오를 받고 있다. 코믹, 액션, 멜로 등 다양하다. 두 작품의 개봉이 끝나면 차기작을 결정할 예정이다.



본인이 영화를 만듦에 가장 활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지, 에너지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른 영화에서 창작, 연출적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지구상에 나와 있는 모든 영화는 나의 훌륭한 선생님이 된다. 정말 좋은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면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받게 되면 창작의 욕구가 솟구친다. 미술가로는 앤디워홀을 매우 좋아한다. 기존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 세상에 새로운 영화적 스토리란 없다. 새로운 배우와 연출이 있을 뿐이다.




 -INDIESPACE on PAper vol.24 (2009년 10월)